Youngever

당연한 그날에 우리는

애플's 2018. 7. 21. 13:19

 

 

2018. 07. 04.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초조하다. 뭐든 써서 만나자는 말만 던져 놓고 제대로 쓴 글이 없으니 당연하지. 반듯한 준비 없이 낮술을 두어잔 걸치고 허겁지겁 약속 장소로 향한다.

 

안녕. 안녕.

 

아무리 뜯어 봐도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기에는 묘한 조합이다. 길벗과 잎싹. 별나무와 나. 어린이집에서 만난 인연이 아니라면 평생에 마주칠 일이 있었을까. 어쩌다 이번 생에서 서로 묘하게 매료돼 비 내린 다음 날의 파란 하늘이 그림같은 대낮에 모여 앉았나.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서로의 글을 나눠 읽는데 네 경험이 꼭 내 경험 같아서 숨을 고르고 천천히 빠져든다.  눈물이 핑 돌다가 작은 미소를 짓다가 이 시간이 멈추거나 오래길 바라게 된다. 이게 뭐라고. 서로의 글을 나눠 읽는 행위란 사소하지만 신비하구나. 

 

평소 잎싹은 자신의 것들은 뒤로 하고 남의 상황과 현실에 헌신적으로 애쓴다. 그런 잎싹은 자기 감정에 곁을 주지도 않을 뿐더러 내보이지도 않으니 때론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내 마음도 덩달아 초조하더라.  사실 이번  '우글' 의 첫 멤버로 잎싹을 떠올린 건 글을 쓸 때만큼은 그녀가 스스로를 마주보고 알아채길 바랐기 때문이다.  이 동생의 깊은 속을 읽기라도 한 듯 그의 첫 글에는 폭발적인 감정을 터트린 그 날의 기억이 말하듯 쓰였다.  이것으로 '우글' 의 최초 목표는 달성된 셈이지만  잎싹만큼 함께 울컥한 길벗과 별나무를 보면서 생각한다.   따뜻한 니네들 오래오래 바라보고 싶다고.   

 

길벗의 옛 글은 명문이라 신형철, 승효상의 칼럼을 빠지지 않고 챙겨 읽던 그 아침의 희열 비슷하게 찌릿하다. 떠나 보낸 친구를 추억하면서 '어쩌면 인생은 아내와 동네 길을 산책하다가 동네 국수집에 들러 먹는 국수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 그러나 '별 거 없는 인생의 그 어떤 순간도 재현될 수 없다'고. 그러니까 '한 순간 한 순간이 곧 우리의 인생 전체일지도 모른다' 는 마치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같은 메시지가 후두두 가슴에 내려 박힌다.

 

언젠가 자정 무렵에야 파장 분위기의 술 자리에 들어 선 길벗이 '오늘 같은 날이 또 올 것 같애! 절대 안 와!' 라고 확신에 차 얘기해 줬을 때 별 거 아닌 밤이 특별한 밤으로 기록되는 그 힘이 떠올랐다. 매일 아침 '어쩌면 오늘 죽을 수 있음' 을 꺼내 읽는 나의 병적인 불안에 위로를 주는 길벗이, 오늘도 그런다. 고마워.

 

별나무의 글에는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이유 전부가 담겼는데 이 말을 들으면 언제나처럼 수줍은 예솔이처럼 키득키득 웃겠지.  '매일 매일의 일상에서 감탄하고 싶다'  고 적혀 있지만 이미 너 그렇게 산다. 흔하게 놓치거나 무심하기 쉬운 일상의 '시적인 순간'을 단박에 알아 채는 심미안의 소유자. 나는 '자주 감사하고 감탄하는' 그녀에게 감동한다. 우리는 아득하게 다르지만 '다름'도 따뜻한 우정의 동기가 될 수 있음을 별나무를 통해 배운다. 

 

그러니까 우리 넷이 굳이 '우글'의 첫 멤버일 이유는 따로 없지만 우리 넷이라 우글의 첫 모임이 가능했을 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없길 바란다.) 우리의 만남도 우리의 글도 그저 함께인 우리도 당연한 일상이 되길.  당연해서 지긋지긋 할 때 쯤 산티아고 순례길 초입의 작은 마을에 모여 먹물 빠에야를 나눠 먹는 그 날을 상상한다.

 

시작은 꿈꾸기 마련이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