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 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정채봉의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이 시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한 번에 내리 읽지 못하고 중간에 멈추고 말았다. 그리고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
단 5분만 온대도... 그 5분 동안 나는 내 온 마음을 오직 엄마에게 기울이며 엄마를 포옹할 것이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그렇게 5분 동안 엄마를 끌어안고 있을 수 있다면.
지난 일요일 책상에 놓여있던 우편물을 뜯었다. 국민건강보험 관리공단에서 온 본인 부담 보험금 환급 청구서였다.
2002년 2월 성명: 남경옥 주민등록번호:37XX... 환급금 188200원.
엄마의 이름을 보는 순간 나는 애써 모른 채 잊고 지냈던 엄마의 부재를 생생하게 느꼈다. 그리고 또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삼한이 생각도 났다. 홀로 쓸쓸하게 지내시던 생모를 하늘로 보내며, 아직 직장도 잡지 못하고 있는 자기 자신이 그렇게 초라하게 느껴졌다고 말하던 삼한이의 미묘하게 떨리던 목소리.
몇 해 전 여름 방학에 신호는 글을 모르시는 어머님께 가갸거겨 한글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말했다.
민이는 요즘 저녁때마다 엄마에게 자전거를 가르쳐드리고 있다고 했다.
소영이는 엄마의 아픈 다리가 땅에 끌리며, 소리가 날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며 흐느껴 울기도 했다.
엄마와 함께 하는 5분,
아니 삐뚤어진 글씨를 써 내려가는 엄마의 거친 손을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흔들리는 자전거를 타고 조금씩 패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바로 그 순간,
다리를 끌며 한 걸음 한 걸음 너무나 힘겹게 집 안을 돌아다니시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그 순간.
엄마는 휴가를 나오셨다.
(2004.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