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뉴욕
이들이 눈앞을 지난 찰나의 순간을 기억한다. 현실감이 무너졌던 기억. 목적 없이 걷다가 횡단보도 앞에 섰을 때 하늘 사이로 쏟아지는 눈부신 햇빛 아래로 지나는 사람들, 이라기보다는 압도적인 풍경. 거짓말이라고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반사적으로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그리고 이 한 장의 사진은’ 나의 뉴욕’이 되었다.
뉴욕의 거리는 과감하고 자유분방하면서 틀에 박히지 않았다. 사람만큼 반려동물의 활보도 자연스러웠다. 길 위의 사람들 옷차림은 그야말로 각양각색. 나는 배웠다. 진정한 패셔너블함은 꼴리는대로 입는 것이라고. 누군가는 길 가장자리에서 정장 자켓과 바지까지 훌훌 벗어 던지고 가뿐한 레깅스 차림으로 변신, 전혀 다른 무드로 제 갈길을 마저 걸었다. 나보다 열 살쯤 어려 보이는 젊은 엄마는 한 손으로 유모차를 밀고 입에는 담배를 물고 춤추듯 걸었다.
뉴욕에서 ‘‘당연하게’ 여긴 일상적인 것들이 전복되는 장면을 걸음마다 목격했다. 아직도 내 기억에 생생한 한 장면은 붐비는 지하철 승강장에서의 남남 커플의 딥키스 장면이었다. 놀라운 건 오직 나 혼자서 넋을 놓았고 다른 누구도 그들에게 집중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성적 지향에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확신했는데 그들의 진한 키스 앞에서 아찔했음을 고백한다. 그날 이후 모든 키스를 사랑으로 읽을 줄 알게 되었으니 꼭 필요한 경험을 한 셈이다.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자유로운 뉴욕에서 받은 선물이기도 하다.
내가 가장 사랑한 스팟은 뉴욕 도서관 바로 앞의 브라이언 파크 였는데, 가족단위 커플단위의 뉴요커들을 두루 관찰할 수 있어 매일 들렀다. (난 여행 중에 새로운 곳을 찾아 돌아다니는 관광파는 아니고, 한번 꽂힌 곳에 가고 또 가는 로컬파다.)
여기만큼 뉴욕의 일하는 사람들이 치열하게 사는 모습도 마주했다. 공원의 청소 노동자들과 식당의 종업원들 모두 무표정이거나 일의 연장에서 미소를 비출 뿐이었다. 브라이언 파크에서 조금만 걸으면 다다르는 뉴욕의 상징, 타임스퀘어에 가까워 질수록 ‘너의 돈을 탐하겠다’는 의지로 눈이 빨갛게 충혈된 고단한 삶과 마주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그들만의 강렬하거나 조용한 취향이, 오래되고 낡아 우아한 것들이 공존하는 모습에 매 순간 영감을 받았다.
나란 여행자를 따뜻이 환대하는 이들도, 이방인으로 낯설게 바라보는 이들도 없없으니 나는 그저 나로서 걷고 마주치고 놀라고 꿈꿨던 거 같아. 딱 일년만 살아보고 싶다고.
출근을 앞둔 일요일 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의 유효함에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