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에 물들다
Faster than Sydney Traffic
시드니 시내 교통보다는 더 빨라요
시드니 공항 수화물 찾는 곳에 적혀있던 문구이다. 이 짧고 유머러스한 문구가 시드니에 대한 나의 첫 이미지였다. 2003년 1월 생애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 땅을 밟았다. 운 좋게 영어교사연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한 달간 시드니 대학에 머물렀다. 떠날 때는 분명 한겨울이었는데 도착하니 한여름이었다. 첫 해외여행이었기에 설레는 만큼 얼마간의 긴장감도 있었는데 이 문구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나왔다. ‘서두를 필요 없어요. 여유를 가지세요, 이곳은 시드니에요.’라고 미리 일러주는 듯했다.
시드니 대학 기숙사에 짐을 풀고 바로 옆에 이어져있는 빅토리아 공원 풍경을 보고 나는 적잖이 문화충격을 받았다. 시드니라면 호주에서도 나름 번화하고 분주한 도시일 텐데 도심 한복판에 규모가 있고 잘 가꾸어진 공원이 있고 사람들은 그곳에서 느긋하고 우아하게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마법의 나무처럼 기괴하게 가지를 뻗은 커다란 나무들과 온통 푸른 잔디 위에서 사람들은 프리스비를 던지며 놀거나 편하게 누워서 책을 보고 있었다. 연못가와 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많았다. 평일 낮 분주한 도심의 풍경이라고는 믿기 힘들었다. 분명 이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Please walk on the grass
잔디 위를 걸으세요!
어느 날 방문한 식물원 (Royal Botanic Garden)의 안내 문구를 한참동안 바라보기도 했다. 그 다음에는 이런 내용들이 이어졌다.
장미 꽃 향기를 맡고, 나무를 안아주고, 새들과 이야기 나누고, 잔디 위에서 소풍을 즐기세요!
지금이야 우리나라 공원 문화도 많이 달라졌지만 그 당시만 해도 ‘자연보호’를 위해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나무를 만지면 나무가 아파요!’라는 온갖 금지의 명령 문구에 익숙하던 때였다. 그래서 자연을 보호가 아니라 교감의 대상으로, 거리두기가 아니라 끌어안기의 대상으로 보는 시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영어표현 그대로 ‘eye-opening experience’였다.
Thieves go to the beach, too
도둑들도 해변에 가요
해변가에서 만난 지역 경찰서의 공식 도난 주의 안내 문구이다. 관공서의 안내문구라고 해서 격식을 차리거나 엄숙할 필요는 없다는, 오히려 재치 있는 우회적 표현이 사람들에게 더 잘 다가갈 수 있다고 말하는 듯해서 시드니 사람들의 유머감각이 부럽기까지 했다.
캥거루와 코알라
호주에만 서식하고, 아기주머니가 있는 캥거루와 코알라를 곳곳에서 만났다. 캥거루와 나의 눈빛이 마주친 순간 동행했던 사람들이 서로 닮았다며 웃었다. 코알라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고 대부분의 시간 잠을 잤고 움직일 때에도 최소한의 에너지를 사용해 느릿느릿 움직였다. 동물원 코알라와 야생 코알라의 차이가 있다면 동물원 코알라는 동물원에서 자고 야생 코알라는 야생에서 잔다는 점이었다. 나는 캥거루의 눈빛을 닮고 싶었고, 코알라처럼 맘껏 자고 싶었다.
왓슨스 베이 (Watson’s Bay)
서큘러키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한 30분쯤 가면 왓슨스 베이에 닿는다. 나는 이곳의 한적하고 평화로운 풍경이 인상적이고 편안해서 시드니에 머무는 한 달 동안 세 번을 다녀왔다. 해질녘에 서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 산책을 하는 부부들, 커다란 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기도 하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해변가를 탐색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식물원 안내 문구에서처럼 자연스럽게 자연과 교감하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깎아지른 듯 가파른 절벽 위에서 세차게 밀려오는 파도를 한참동안 멍하니 바라보았고, 멀리 시드니 도심 위로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움에 감탄했다.
물들다
시드니에서 얼마간 생활하면서 서서히 나는 시드니 사람들이 생활을 누리는 속도와 리듬에, 자연과 교감하는 방식에 물들어 갔다. 연수에서 만나 친하게 지내며 삼남매라는 별명을 얻은 선생님들과 어우러져서 하루 종일 노래를 흥얼거리며 맨리비치를 따라 길게 이어진 산책로를 거닐었고, 시드니 대학 캠퍼스 잔디밭에 누워 남반구에서만 보인다는 남십자성을 밤하늘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시간에 쫓겨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진 찍기에 바쁜 관광객이 아니라 편한 옷을 입고 캠퍼스와 공원 곳곳을 아침저녁으로 거니는 일상의 산책자로 지낼 수 있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처음에 기묘하고 낯설게 여겨졌던 빅토리아 공원 마법의 나무의 기대어 CD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고 <서준식의 옥중 서한>을 천천히 읽었다. 전향서 한 장만 쓰면 감옥에서 바로 나올 수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옥중의 자유를 택한 사람, 감옥 안에서도 굳은 의지와 깊은 성찰로 스스로를 끊임없이 벼리던 한 고결한 영혼이 적어 내려간 한 문장, 한 문장을 마음에 새겼고 그가 옥중에서 ‘자식주의자’ 어머니를 떠나보내고 통곡할 때 함께 통곡했다. 깊은 밤 혼자 있는 기숙사 방에서 영화 <프랑켄스타인>과 <레옹>에 관해, 관계의 부재가 가져오는 외로움의 깊이와 절망, 예기치 않은 만남과 관계를 통해 송두리째 변화하는 삶에 관한 글을 썼다.
세상에! 무려 16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시드니에 관해 뒤늦게 이 글을 쓰다 보니 그 때 시드니에서 잠시 체험했던 삶의 속도와 리듬, 자연과의 교감 방식이 지금 내 일상의 일부분들을 은연중에 물들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분주한 학교생활 중에도 나는 수업이 없는 시간이면 일을 잠시 미뤄두고 혼자 운동장을 산책하거나 볕 좋은 곳에 앉아 책을 읽는다.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에도 야외 벤치에 앉거나 운동장을 함께 거닐며 대화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지금 심학산 언저리에 자리 잡은 전원주택에 살게 된 것도, 아이의 손을 잡고 산을 넘어 학교에 가고, 저녁에 동네 산책을 하며 계절에 따라 변화하는 동네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어쩌면 오래 전 지구 반대편 호주 시드니에서의 경험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닐까? 짧은 순간이어도, 미숙하더라도 새롭고 다양한 경험을 한다는 것은 그리고 그 경험에 온전히 자신을 열어놓는다는 것은 스스로를 새로운 방식으로 은연중에 물들이기 마련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런 경험들이 쌓여 오랜 시간이 흐른 후 삶의 갈피를 바꾸기도 한다. 비록 한 달간의 짧은 생활이었지만 (당연히 그것이 시드니의 전부일리 없고, 시드니 사람들 대부분의 생활방식일 수도 없지만) 시드니는 내 생활에 유머와 느긋함, 자연과의 어우러짐이 조금이나마 배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준 정겹고 고마운 도시이다. 그러기에 시드니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곳 파주 산남리까지 이르는 길은 멀지만 멀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