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rdust 길벗

깊고 아름다운 흔들림에 관하여

isanha 2019. 6. 17. 15:26

- 서준식 옥중서한 1971 - 1988 (2002, 야간 비행)을 읽고 

 

모든 것을 빼앗기고 쇠창살과 시멘트 담 안에 갇혀 실의의 날들을 보냈던 나에게 편지를 쓰는 것은 거의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나는 편지를 쓰면서 우리들 시대에 바치는 나의 고난의 의미를 확인했고, 편지를 쓰면서 자신의 내부를 깊이 들여다볼 수 있었고, 편지를 쓰면서 절망적인 고독으로부터 도피할 수 있었다. 편지를 쓰는 일은 나의 논쟁 행위였으며 고해성사였으며 절절한 기도였으며 또한 즐거운 놀이였다. 곱은 손에 호호 입김을 불면서, 혹은 봉함엽서 위에 뚝뚝 떨어지는 땀을 손바닥으로 자꾸만 훔치면서 나는 열심히 편지를 썼다. 절망하지 않기 위하여. 그리고 살아남기 위하여 - 일어판 머리말에서

 

 

2002년 가을 첫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1년 반 동안 하루에 몇 편씩 그의 편지를 읽었다. 몇 번 씩 멈추고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기곤 했다. 한 번은 유리창 밖 일상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달렸다. 맘껏 달리며 바람을 느끼고 싶었다. 가을 햇살을 느끼고 싶었다. 17년 동안 서준식이 맘껏 달리지 못한 길을 달리고 싶었다. 햇살은 축복처럼 쏟아졌다. 서준식은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그리웠을까? 시인 김남주가 창살에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누이가 짜준 목도리와 그녀와의 사랑을 떠올리고 그리워했던 것처럼.

1971유학생 간첩단의 일원으로 체포되어 7년을 살고, 1988년 좌익수로는 처음으로 석방되기까지 서준식은 엽서에 깨알같은 글씨로 분노와 슬픔, 외로움과 서러움, 절망과 희망, 사랑과 그리움을 담아냈다. 17년의 세월. 그는 잃었다. 20대와 30- 삶에 관한 열정과 가능성으로 빛나는 청춘의 페이지들을. 그 사이에 그는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를 잃었다. 그러나 끝내 그는 주체성과 존엄을 잃지 않았다.

 

그는 끝임 없이 흔들렸다.

많은 외로움과 괴로움에 무겁게 억눌리면서 너무도 답답하게 숨이 막혀 올 때면 나는 세상의 모든 어리석음을 자기 자신의 것으로 삼아 함께 끌어안고 신음한다'라는 나의 신조를 때로는 까맣게 잊고, 이 답답함에서 벗어나려고 앞뒤 헤아리지도 않고 광포하게 몸부림을 치곤 한다. 그리하여 몸부림치면 칠수록 나는 더욱 고립되어, 바닥 없는 고독의 늪으로 점점 빠져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나는 이렇게도 깊이 병들어 버렸다. (p.387. 839월 영실에게)
관찰하고 직시하고 천착하면서도 염세에 빠지지 않는 길은 사랑이란 말인가? 나에게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다는 말인가?( p.456. 844월 영실에게)
참으로 고통스러운 세월! 나는 오랜 세월을 이렇게 흔들리며 살고 있다.(p.778. 8710월 경식에게)

 

끝내 햇빛을 보지 못하고 감옥에서 숨을 거두게 될지도 모른다는 절박감구체적 실존을 갖는 구체적 인간에 대한 구체적인 사랑의 축적이 없다는 절망감, ‘비열함에 대한 분노나 악에 대한 증오도 인간의 얼굴을 일그러지게 하고 인간의 마음을 뒤틀리게 한다는 깊은 슬픔 속에서 그는 흔들려야 했다. 그러나 그 흔들림 속에서 그는 진정한 혁명가로서의 예수를 발견한다. 구체적 인간에 대한 인격적 접촉과 무한한 애정, 감동이 밑바탕이 될 때 정의도, 혁명도 의미를 지닌다는 사실도 되새긴다. 그가 읊은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흔들리는 만큼 그는 깊어지고 아름다워진다. “오래 흔들렸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서러웠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오래 목말랐으므로 너는 아름답다.”

그는 끝내 흔들리지 않았다. 노역을 하며 그는 생각한다.

나같은 놈에게 팍! (곡괭이가 땅을 파는 소리) 아주 사랑스러운 팍! 마누라나 아들 딸이 있어 팍! 이것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팍! 이렇게 팍! 땀투성이가 되어 팍! 곡괭이를 휘두르며 팍! 살아갈 수 있다면 팍! 그것만으로도 팍! 얼마나 행복할까 팍!!!

전향서도 아니고 준법서약서 한 장만 쓰면 그는 그 소박한 행복에 더 가까워 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준법서약서는 형식이고 명분 세우기용일 뿐이라고, 감옥에서 고립되는 대신 세상에 나와 더 많은 일들을 하라고 그에게 말하는 변호사와 가족들의 애정 어린 설득에도 흔들리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 침해라는 의미에 있어서 전향서와 서약서에 얼마만한 차이가 있는지도 알 수 없다. 나는 법치국가의 원칙을 철저히 무시한 위헌투성이인 악법에 의하여 십년간이나 억울하게 감금당해 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나의 젊음은 이 보안 감호소의 독방에서 다 가버렸고 이제는 허리도 자주 아파 자주 누워 지내는 반 폐인으로 남아 버렸다. (p.755. 878월 영실에게)
나는 다만 땅에 결박당한 농노처럼, 저 산 너머 넓은 세상을 늘 동경하면서도 이 보잘 것 없는 좁은 땅이야말로 내가 벗어나서는 아니 되는 땅임을 자각해 왔을 뿐이다. (p.803 882월 순전에게)
나는 나의 이 실존이 아무리 보잘것없는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필연을 만들어 가는 커다란 힘의 일부분임을 굳건히 믿고 싶다. (p.804. 882월 순전에게)

 

그는 이웃의 작은 아픔에도 흔들렸다. 그러나 권력의 계속되는 고문과 회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광폭한 시대의 폭력에 온 몸으로 저항하고 스스로 속죄양이 된다. “진보주의자에게 구속은 곧 자유이다. 구속을 자유로 만들기 위해 진보주의자는 기꺼이 금욕의 아픔 속에 살아간다"는 흔들림 없는 믿음이 그를 체제내화 되지 않는 참다운 래디컬이 되게 한다. 그래서 그는 석방 이후에도 체제내화 되지 않는 인권 운동가의 삶을 살아가고, 부당한 정치권력에 불복종으로 흠집을 내기 위해 또 다시 감옥을 선택하기도 했다.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감정의 절제와 관조에 기반한 철학적 사색 속에서 고요한 바다와 같은 울림을 준다면, <서준식의 옥중서한>은 진솔한 감정의 거침없는 표현, 끊임없는 갈등과 고뇌 속에서 앞으로 치닫는 정신의 치열함과 자유로움으로 세차게 흐르는 강물과 같은 울림을 준다.

사촌동생 순자에게 띄우는 편지에서 서준식은 기다림의 슬픔과 아름다움에 관해 이야기한다.

기다림이란, 우리가 바라고 기다리고 있는 그 무엇인가가 지금 여기에는 없기 때문에 외롭고 슬프고 아프다. ... 매일 매일을 기다림도 없이, 쫓기고 밀리고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그저 먹고 싸고 숨쉬기만 하는 삶,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 그러니까 얼마나 간절하고 목마르게,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것을 기다릴 수 있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아름다움과 크기가 결정된다고 해서 잘못은 아닐 것이다. (p.428. 8312월 사촌 동생 순자에게)

 

우리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고, 얼마나 간절하게 목마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