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회의중
“엄마 나갔다 올게. 아빠랑 씻고 잘 준비하고 있어.”
저녁을 먹여 놓고 맥주 캔을 두어 개 챙겨 이웃집으로 마실을 나가는데 아들이 묻는다.
“엄마 또 회의해?”
“으..으응..”
회의는 회의지.
회의 안건이 엄마 혼자 친구들과 가는 해외여행에서 야무지게 놀 궁리라는 것을 밝히지는 못 했지만 당당히 나선다.
남편은 궁금해하지도 않고 그러려니 한다.
임신과 동시에 전업주부의 삶으로 미끄러져 들어온 나는 첫 아이 출산 후 4년여를 창살 없는 감옥에서 살아야 했다. 자존감은 바닥으로 떨어졌고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라곤 남편뿐이었으니 그의 귀가 시간에 목을 멜 수밖에. 하지만 육아가 커리어에 하등 영향을 미치지 않는 ‘아빠’의 위치에 있었던 남편은 나의 감옥을 이해할 수 없었고 어느 날 실언을 하고 만다.
“당신도 나가서 사람들 좀 만나.”
남편의 저 발화에 짜증, 경멸의 뉘앙스가 일절 없었음에도 온 몸으로 느껴진 숨은 맥락은 나를 너무나 아프게 찔러버렸다.
‘너도 어쩔 수 없는 아줌마가 되었구나. 숨막히게 나만 바라보고 있지 말고 주체적으로 살아.’
남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분노와 모멸감으로 온 몸이 부들거렸지만, 그 상황에서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저 맥락을 파악해 버렸다는 사실을 들켰다간 주저앉아 울고 말았을 테니까..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날이 오고 말았다. 주저앉아 한없이 울게 된 날.
그 날도 남편은 전교조 교사모임이 있는 날이었다. 칼퇴근이 가장 큰 메리트인 교사란 직업을 가졌음에도 남편은 보충 수업, 담임 업무, 교사모임 등으로 일주일 내내 일찍 들어오는 날이 없었다. (그는 당시의 스케줄에 나와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혹 이혼 등의 사유로 이 시기 남편의 행적을 추적한다면 내 주장이 옳음을 증명할 자신이 있다.) 남편은 좋은 교사로 최선을 다하고 있었고 그것을 나무라면 속 좁은 악처가 되는 것 같아 남편, 아빠의 역할을 마음껏 요구하기도 어려웠다.
이렇게 꾹꾹 눌러 담았던 상처가 그 날 터지고 만 것이다.
애정하는 후배 녀석의 부친상 소식이었다. 장례식장에 가는 길도 만만치 않았지만 남편만 일찍 들어온다면 아무리 후줄근한 차림으로라도 가 보고 싶었다. 그냥 녀석의 손 한번 잡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보고 싶었다. 그 시절 –아줌마가 아닌-생기발랄 20대를 함께 보낸 사람들을.
“오늘 늦어? 나 서울 갔다와야 하는데 일찍 못 와?”
“어쩌지? 늦는데..”
이걸로 끝이었다.
늦은 시간 귀가하는 남편이 ‘삐삐삐삐’ 현관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놀란 눈으로 왜 그러냐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남편은 이미 그치지 않는 나의 눈물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나는 한 시간 이상 온 힘이 다 빠져나가게 울음을 토해내고 나서야 남편과 마주 앉을 수 있었다.
우리는 25개월 된 딸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남편은 모임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결국 시늉을 했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의 아픔에 어떤 식으로든 액션을 취했기에, 그보다는 그동안 괜찮은 척 했던 나를 내려놓았기에 더 이상의 그날 밤과 같은 폭주는 없었다.
그 날 나는 엄마가 아닌 ‘사람’이고 싶었던 게다.
친구의 아픔을 손잡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
남편의 일정표와 상관없이 홀로 외출을 할 수 있는 사람.
추억을 나눈 친구와 대화하며 웃을 수 있는 사람.
통곡의 밤이 있고 일 년 후에 딸아이를 공동육아어린이집에 보내게 되었다.
공동육아어린이집이란 곳이 참 요상한 곳이어서 내 돈 내고 수고로움을 자처하는 곳이다.
(강제로) 교육도 받아야 하고, (강제로) 친교도 나누고, (강제로) 품앗이를 해야하는 곳.
그런데 이곳에서 나는 다시 ‘사람’이 되어갔다.
친구가 생겼다.
그 친구들과 함께 책을 읽고, 술을 마시고, 수다를 떤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의 외출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회의에 참석하는 엄마를 기다릴 줄 알고, 엄마의 시간이 따로 있는 것을 안다.
이곳에서 내가 ‘사람’이 되어가면서 내 아이도 남편도 ‘사람’으로 보는 눈이 생기는 듯하다. ‘쟤는 지금 이게 하고 싶어 저러는 거겠지. 나라도 그렇겠네...’하는 마음이 조금 넓어지는 것이다. 내가 ‘사람’대접 못 받고 ‘사람’답게 살지 못할 때의 억울함이 없기에 가능한 마음이다.
아이와 한 몸으로 살며, 한 몸 아닌 남편에 원망, 분노, 모멸... 온갖 부정적 감정의 복합체로 똘똘 뭉쳐 아픈 이 땅의 엄마들이 부디 ‘사람’의 지위를 회복하길 바란다. 그러려면 친구가 필요하고, 아이 키우며 친구 사귀기 좋은 곳이 공동육아어린이집이라는 팁을 살짝 전해 드린다.
오늘도 나는 도서관에서 여행 책을 한 권 빌렸다. 책에서 찍은 핫스팟을 늘어놓고 친구들과 어디를 갈지 골라 봐야지.
일찌감치 저녁을 먹이고 마실을 나가야겠다.
“엄마 회의 좀 하고 올게~”
@2018.6.28. 잎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