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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닮은 별나무

밤 산책.

제주도 오름을 걷고 난 저녁 숙소에서 쉬기를 선택한 친구들을 뒤로하고 마을 산책을 선택했다.
해 떨어진 제주도 작은 마을은 금세 깜깜해졌다. 유독 낮게 느껴지는 제주도 하늘에 별과 달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가로등 불빛을 벗어나 조용한 어둠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자 갑자기 무서움이 올라온다. 밤 산책 기분을 좀 더 내려고 올라오는 무서움을 이겨내고 몇 발을 더 떼어보지만 이내 몸을 돌려 빠른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아쉬움에 숙소 주변을 더 어슬렁 거리다 밤 산책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에 별 보러 다녀온 밤에도 그 무서움을 만났다.
숙소에서 별이 보이면 무조건 성삼재를 올라가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 별을 보자마자 출발. 지리산 작은 마을도 해가 떨어지니 금세 어두워졌다. 이른 저녁이라 별이 많이 보이진 않겠다 싶은 마음에 창 밖으로 내민 손에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은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산길을 달리기 시작하자 야생동물 주의 표지판이 간간히 보이기 시작한다.
차 한 대 오가지 않는 어둠이 더 깊숙하게 길어지면서 무서움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 반갑던 아기 고라니도 지금 이 밤엔 왠지 만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반달곰을 만나는 상상의 나래가 펼쳐질 때쯤 남편과 우스갯소리를 주고받으면서 조금씩 올라오는 겁을 물리쳐 본다. 제발, 오늘 별 보고 싶었던 사람이 우리만이 아니길. 주차된 몇 대의 차량을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했다. 세상에 사람이 제일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이 밤엔 사람이 제일 반갑구나.
여름 끝자락에 만난 지리산 바람은 이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듯 시리다. 지리산에서 만난 별은 제주도 낮은 하늘과는 다르게 아주 멀어 보이지만 더 쏟아질 듯 하늘을 가득히 매운다. 아이와 주차장 바닥에 그대로 누워 별을 본다. 오자마자 떨어진 별똥별을 놓친 아이는 별똥별을 기어코 보고야 말겠다고 버티고 누웠지만 몸을 절로 떨리게 하는 시린 바람에 슬그머니 다음을 기약한다.

풀벌레와 개구리 소리, 빗소리가 가득한 오늘 밤엔 우산을 쓰고 산책을 나가볼까? 잠시 생각하다 눌러앉아서 글쓰기를 선택했다. 별이 보이지 않는 밤이지만 마음만큼은 반짝반짝 빛이 난다. 아이들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혼자 글을 쓰는 여유 때문일까나. 잔잔히 울리는 노래 때문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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