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려견 ‘풍경이’를 보내며
“수술 도중에 테이블 위에서 죽을 수도 있습니다.”
수의사가 낮은 어조로 말했다. 초음파 검사와 혈액 검사 후에 생각보다 상태가 너무 안 좋아서 최악의 상황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결정을 내려야 했다. 최악의 상황을 무릅쓰고 수술을 감행해야 할지, 여기서 멈추고 마지막 순간들을 함께 보내야 할지. 풍경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없으니 우리 가족이 대신 선택해야만 했다. 수술을 받다가 도중에 죽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할 수 있다. 수술을 받지 않으면 마지막으로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조금 더 주어지긴 하겠지만, 그 시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라고 했다. 당장 몇 시간 후일 수도 있다고 의사가 말한다. 침묵이 이어졌다. 불확실한 미래의 결과를 염두에 두고 해야만 하는 선택은 곤혹스러웠다. 풍경이는 한쪽 다리에 주삿바늘을 꽂은 채 진료 테이블 위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먹성이 좋아서 사료를 가지고 다가가는 동안 세차게 꼬리를 흔들고, “기다려!”라고 말하는 순간에도 연신 침을 흘리다가 “먹어!”라는 말이 끝나자마자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사료를 흡입하던 풍경이었다. 그러던 풍경이가 며칠 동안 사료를 먹지 않았다. 생식기 주위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목욕도 시켜주고, 생선도 삶아주었지만 잘 먹지 않았고, 기력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미 사진을 찍어 동물병원을 방문한 후 긴 시간 동안 진료 상담을 진행하고, 크고 작은 몇 가지의 가능성에 관해 설명을 들은 후였다. 어린이날 차 뒤편에 풍경이를 태우고 온 가족이 동물병원으로 향했다. 입양하는 날 아기 풍경이를 아내가 안고 차에 탄 때를 빼고는 같이 차를 타고 이동하는 일은 처음이었다. 워낙에 기운도 세고 장난기도 있어서 말썽을 많이 부리는 녀석이라 평소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9살짜리 딸아이는 차 뒤편에 탄 풍경이가 흔들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연신 소리내어 웃었다. 어쩌면 크나큰 불안과 걱정을 숨기기 위한 웃음이었을지도 모른다. 차에서 내린 후 기력이 없는 풍경이는 느릿느릿 걸었고, 진료소로 향하는 동안에도 조금씩 피를 흘렸다.
“수술은 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 시간을 함께하겠습니다.”
풍경이와 시선이 마주쳤다. 고통이 있을 텐데도 외마디 신음도 없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본다. 스스로 몸을 추스를 힘마저 없어 보인다. 10년을 함께한 반려견을 이제 떠나보내야 한다. 아무런 작별의 인사도 없이 갑작스럽게 떠나보낼 수는 없다. 풍경이의 병명은 자궁축농증이다. 중성화 수술을 하지 않은 암컷이 노년기에 이르렀을 때 흔하게 발병하는 질병이다. 생식기가 세균에 감염되고 염증이 생겨나 제때 수술을 하지 않으면 패혈증으로 이어져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한다. 풍경이의 경우 고름이 밖으로 흘러나오는 개방형이 아니라 폐쇄형이어서 뒤늦게 진단이 이루어지고 생존확률이 높은 수술 시기를 놓친 것이다. 낮은 확률에도 불구하고 반려견에 대한 희망을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어서 수술을 선택하는 가족들도 있다고는 하지만 수술대 위에서 이별하는 최악의 상황은 피하고 싶었다. 생로병사라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을 피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비록 짧다 하더라도 마지막을 함께하며 밀도 깊은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아내와 의논하고 동의를 얻은 후 수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수술은 하지 않겠다고. “풍경이와 같은 상황에 처한다면 저 또한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에 의사는 본인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몇 번 탈이 난 적은 있었지만, 그때마다 금방 회복했었고, 워낙에 잘 먹고, 건강했던 녀석이라 갑자기 이렇게 위급한 상태가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수액을 맞고, 강도 높은 진통제와 항생제를 주사한 후 되돌아오는 길에 시아가 이야기했다. “오늘은 즐겁고 행복한 어린이날인데…. 왜 하필 행복해야 할 어린이날에….”
집으로 돌아와 마당에 풍경이를 풀어주었다. 풍경이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가족 모두가 알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풍경이 곁에 오래 머물렀다. 풍경이를 쓰다듬고, 바라보고, 옆에 나란히 누워서 이야기를 건넸다. 풍경이를 마주 보며 마당에 누운 시아는 풍경이의 다리를 만지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푸르게 돋아난 잔디와 활짝 피어난 붉은 철쭉이 부드러운 햇빛을 받고 있었다. 시아는 풍경이와 머리를 맞대기도 하고, 풍경이 등에 한쪽 팔을 괴고 환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기도 했다. 어떤 비극적인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 평온함이 가득한 순간들이었다. 단지 그 모습들을 지켜보는 내 마음이 순간순간 흔들릴 뿐이었다.
“풍경아! 기억나니?”
긴 하루였다. 깊은 밤에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어쩌면 풍경이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를 산책을 나갔다. 비록 느렸지만, 풍경이는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풍경이와 천천히, 나란히 걸으며 나는 풍경이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넸다. 그 순간 풍경이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디며 내 말 한마디, 한 마디를 귀 기울여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풍경아! 기억나니?”라고 첫 마디를 시작한 이야기는 산책 내내 이어졌다. 입양하던 날 여러 마리의 강아지 가운데 우리를 보고 제일 먼저 다가왔던 첫 만남의 순간, 어미가 그리웠는지 그날 밤새 울었던 일, 다목적실에 혼자 있는 녀석이 계속 아른거리고, 마음에 걸려서 명상 연수를 하다가 도중에 집으로 달려왔는데, 힘들고 답답했는지 문지방을 물어뜯고 있었던 일,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하고 부모님께 해드리려고 산 한우 몇 근을 낚아채서 순식간에 먹었던 일, 내 손에 있던 고기 뼈다귀를 가로채려다가 내 손가락을 물어서 병원에 가서 바로 파상풍 주사를 맞아야 했던 일, 이 동네 저 동네 이곳저곳 골목과 들판을 걷던 순간들, 주변에 사람이 없는 외딴 공터에서 테니스공을 던지면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며 공을 다시 물어오던 장면들. 온 가족이 산책을 같이하는 날 아내와 아이가 저만치 뒤처져 있으면 풍경이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앉아 고집스럽게 머무르곤 했다. 아무리 먼저 가자고 줄을 당겨도 꿈쩍하지 않다가 아내와 아이가 가까이 오면 그제야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 밤 떠돌이 개와의 하룻밤 인연으로 우리도 모르게 새끼를 배고, 추운 겨울날 새벽에 갑자기 출산을 한 일도 있었다. 아침에 마당에 나가보니 아직 어미가 되기에는 너무 어릴 때이기도 했고 몹시 추운 날이어서 그랬는지 이미 새끼 몇이 죽어있었다. 아직 돌도 되지 않은 딸아이를 돌보기에도 고되고 벅찬 시기에 갓 태어난 강아지들을 품에 안고 밤새 작은 주사기를 통해 어미가 주지 못하거나 주지 않는 젖을 대신해 동물병원에서 산 영양분을 공급해주었다. 그렇지만 새끼들을 살리려는 우리의 애타는 바람과는 달리 그 후로도 두어 마리의 새끼를 더 산에 묻어야 했다. 결국, 그런 과정을 통해 마지막까지 남은 새끼는 단 두 마리였다. 새끼들 가운데 유일하게 건강하고 나중에는 어미와 맞설 정도로 드세었던 암컷에게는 평화롭고 건강하여지라는 의미로 ‘평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고, 아내의 온 정성과 노력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살아난 수컷에게는 ‘기적’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시간이 흐르고 그 아이들이 나중에 눈을 뜨고 경쾌하게 뛰어다닐 수 있게 되었을 때, 아침에 마당을 나서면 녀석들이 쪼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그렇게 귀엽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각종 예방 주사를 맞히고 석 달 정도 키운 후에 그 아이들을 입양 보내야 했는데 평강이를 입양 보낸 후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던 풍경이가 기적이 마저 입양을 보내고 홀로 남은 날 어찌나 밤새 서럽게 울부짖던지 지금 되돌아봐도 마음이 아프다.
풍경이가 속한 리트리버종은 에너지가 많아서 어릴 때 장난기도 많고 말썽도 많이 부리지만 키운 지 2년에서 3년이 지나면 ‘거짓말처럼’ 순한 천사견이 된다고들 했다. 겪고 보니 ‘거짓말’이었다. 뭐가 불만인지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밤새 짖어대던 적도 여러 번이었다. 줄이 꼬여서 그런 경우도 있었고, 산책을 시켜달라고 그런 경우도 있었다. 어느 깊은 밤, 잠을 깨기 싫어서 버티고 버티다가 온갖 화와 짜증을 끌어안고 마당을 나섰는데, 그때 밤하늘을 가득 채운 별빛과 신선한 공기에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사납고 시끄러운 마음 대신 감탄과 고요함이 자리 잡았다. 풍경이가 의도치 않게 내게 건넨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그런 순간들이 쌓여 어느덧 10년이 되었다. 평범하다면 평범하고, 특별하다면 특별한 그런 순간들에 관해 이야기하며 풍경이와 마을 길을 걷고, 논길을 걸었다. 평범함과 특별함을 나누는 기준은 따로 없다. 그 순간들을 바라보는 눈길과 마음이 빚어내는 차이일 뿐이다. 달빛이 은은하고 별이 총총한 밤이었다. 도랑물 소리마저 냇물 소리처럼, 강물 소리처럼 들리는 밤이었다. 사납고 시끄러운 마음 대신 감탄과 고요함이 자리 잡았던 어느 밤처럼, 슬픔과 두려움 대신 평온함과 그리움이 가득한 밤이었다.
오랜 제자이자 친구인 성호에게 전화했더니 근무 중이라고 했다. 원래 11시에 퇴근인데 3시까지 연장근무라고 한다. 메시지를 보냈다.
‘풍경이와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산책을 하다가….’
답이 왔다.
‘인사 잘 해주세요
즐거웠던 기억들
함께했던 기억들
잘 챙겨주세요’
‘내내 그 이야기하면서 산책했어.’
“아빠! 풍경이 사료 먹었어!”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서 딸아이의 도시락으로 유부초밥을 만들고 풍경이와 산책을 했다. 심학산 둘레길을 걸었다. 순간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여겨졌다. ‘어쩌면….’이라는 마음으로 일어나서 제일 먼저 확인했는데 아직 풍경이는 우리 곁에 있었다. 게다가 아침에 참치를 조금이나마 먹었다. 반 아이들과 첫 상담을 하는 날이었는데 온종일 풍경이가 궁금하고 걱정이 돼서 자주 생각했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음을 확인하고 마음을 쓸어내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그다음 날(5.7.목) 퇴근을 하고 집에 돌아왔더니 시아가 들썩들썩 격양된 목소리로 외쳤다.
“아빠! 풍경이 사료 먹었어!”
“정말?”
예상 밖의 일이었다. 하루하루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풍경이를 바라보고 인사를 나눴는데 풍경이의 상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었다. 나중에 딸아이의 일기장을 우연히 봤는데 그날은 풍경이가 사료를 먹어서 기쁘고 감사한 날이라고 적혀있었다. 풍경이가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안도했다. “그렇지! 우리 풍경이가 누군데. 혹시 수의사분이 오진한 거 아닐까?” 희망 섞인 농담을 던질 정도로 풍경이는 날이 갈수록 상태가 좋아졌다. 네 다리를 땅 위에 굳게 딛고, 꼬리를 흔들며 어서 밥을 달라고 짖어대는 풍경이의 모습이 새삼스럽고 감격스러웠다. 늘 지켜보던 모습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에게 생각보다 더 긴 날들이 남았는지도 모른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범한, 아니 특별한 날들이 더 이어지고 우리는 그 시간들을 함께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우리가 간절히 바라고 있으니까. 그리고 우리의 간절한 바람처럼 정말 그런 날들이 이어졌다.
“삶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해!”
어느 날(5.15.금) 퇴근 후 풍경이에게 사료를 주는데 풍경이가 전혀 먹지를 못했다. 배 부분이 상당히 부풀어 올랐고, 숨을 쉬기 힘들어했다. 한동안 이제 거의 원래의 몸 상태를 회복하고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아서 한시름 놓고, 기적이라 여기며 감사히 여겼는데…. 정해진 시간이 늦추어진 것일 뿐 멈출 수는 없는 듯했다. 풍경이가 마지막 힘을 다해 버티며 우리에게 선물해준 시간인 듯했다.
다음 날 아침 다시 사료를 조금 줬지만, 여전히 먹지 못했다. 물만 연거푸 마셨다. 자궁축농증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산책을 가려 했지만, 물마저 토하고 기력이 없어서 그냥 마당에 풀어주고 쉬게 했다. 딸아이에게 풍경이랑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함께 있어 주라고 했다. 시아가 마당에 떨어져 있던 ‘살구’를 던지니 풍경이가 일어나 달린다. 시아가 웃는다. 시아가 풍경이 목에 풀꽃을 걸어준다. 풍경이 옆에 누워서 나지막하게 혼잣말을 한다.
“삶의 희망을 놓지 말아야 해! 끝까지 매달려!”
그러다가 개는 늑대의 후손이라며 늑대처럼 울부짖는 흉내를 낸다. 이게 하울링이라며. 늑대무리의 우두머리가 ‘사냥감을 찾았다’라고 알리는 소리라고 한다. 그 우두머리 늑대가 판단력이 흐려지면 리더 자리에서 내려온다는 말도 덧붙인다. (도대체 이런 걸 다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브리태니커 만화 백과 <포유류> 편에 나오는 이야기라며 방에서 책을 찾아 건네줬다.)
아침에는 풍경이가 영 기력이 없어서 집 앞 언덕에서 몇 번 멈칫하다가 포기하고 돌아왔는데, 오후에 다시 시아와 풍경이와 동네 앞 논까지 산책하러 갔다. 풍경이가 영 힘에 부치는지 중간중간 멈추어 선다. 돌아오는 길은 훨씬 더 멀리 느껴졌다. 아예 중간에 걸음을 멈추고 털썩 주저앉은 다음 몇 번이나 한참 동안 숨을 고르며 엎드려있기도 했다. 우리가 함께한 마지막 산책이었다.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라!”
풍경이에게는 이제 산책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았다. (5.17.일) 일어나서 걷기조차 힘들어 보였다. 가끔 물을 벌컥벌컥 마실 뿐 참치도 사료도 입에 대지 않았다. 체념 어린 눈빛으로 고요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얼마 전까지도 내가 마당에 나가면 힘든 몸을 일으켜서 꼬리를 흔들며 내게 다가오고, 쓰다듬으면 가만히 몸을 맡기던 녀석이었다.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기라도 하듯, 고통을 숨기려는 듯 마당 화단 속에 머리를 푹 넣고 엎드려있기도 했다. 온종일 마음이 불안해서 어떤 일에도 온전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날이 잔뜩 흐리고 밤에 비가 내릴 것 같아서 시아 놀이방 옆에 있는 지붕 아래 데크로 풍경이를 끌어안아 옮겼다. 어느새 어둠이 내렸고, 아내는 풍경이 곁에 모여드는 날파리와 모기들을 쫓아내려고 애쓴다. 밑에 돗자리를 깔고, 시아가 어릴 때 품고 자던 애착인형을 곁에 놓아주고, 우리가 쓰던 베갯잇을 풍경이에게 덮어주었다. 풍경이 곁에 가족들이 둘러앉았다. 하염없이 풍경이의 고요한 눈빛을 바라본다. 연신 풍경이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딸아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풍경이랑 같이 놀고 싶은데….”
아이 엄마가 묻는다.
“우리 풍경이 다음 생에 태어나면 뭐로 태어나라 그럴까 시아야?”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라!”
“풍경아!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태어나서 아프면 아프다고 얘기도 하고….”
풍경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말들을 건넨다. 우리에게 남아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모두 알았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풍경이 좋은 곳으로 갔어!”
새벽 2시 무렵 잠이 깼다. (5.18.월) 풍경이에게 가볼까 했으나 왠지 두려워서 그러지 못했다. 전자책을 조금 읽다가 풍경이의 사진들과 영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아내가 조용히 방으로 들어왔다.
“자기야! 풍경이 죽었어.”
아내가 낮게 속삭였다.
거실로 나와 소리 내 우는 나를 아내가 위로했다.
“풍경이 좋은 곳으로 갔어.”
풍경이는 우리가 깔아준 돗자리와 베갯잇, 애착인형이 있는 데크 위가 아니라 그 아래 조금 떨어져 있는 수돗가 옆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바닥 위에 숨을 거둔 채 누워있었다. 다가가 만져보니 몸이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배는 복수가 차서 불어있었고, 눈은 뜬 채였고, 입은 약간 벌어져 있었다. 깊은 밤 신음조차 내뱉지 못하고, 홀로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숨을 거둔 것이었을까? 어린 나이에 홀로 새끼들을 낳던 그 새벽처럼 또 오롯이 혼자서 고통을 감당했던 것일까? 그 외로움과 고통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아니 어쩌면 그 외로움과 고통, 슬픔은 내 안의 것들일지도 모른다..
24시간 캐어를 한다던 반려견 장례업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내와 둘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풍경이를 수건으로 감싸고 계단을 올라서 차로 옮겼다. 파주 보광사 근처에 있는 조용하고 아담한 곳에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마지막으로 풍경이와 함께하는 장례 예식 시간. 시아와 나, 아내가 차례로 풍경이에게 쓴 편지를 낭독했다. 시아는 편지를 읽다가 도중에 울음을 터뜨렸고, 아이 엄마가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태어난 지 한 달 무렵부터 10년 동안 풍경이의 생로병사를 지켜보고 일부분을 함께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미와 헤어지고, 스스로 어미가 되고, 새끼들과 헤어지고, 들판을 달리고, 병에 걸리고, 더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새벽에 신음도 없이 홀로 죽음을 맞았던 한 존재의 탄생 무렵부터 마지막 순간까지를 지켜봤다. 풍경이와 내가 보낸 평범한 날들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관계는 구체적이고 특별한 것이 되었다. 내게 그 한 존재의 생로병사는 나를 비롯한 모든 존재가 겪어야 할 생로병사의 압축판처럼 여겨지고 다가왔다. 마지막 인사말도 나누지 못하고 헤어진 엄마 생각도 났다. 몸도 예전 같지 않고, 마음도 힘든데 빨리 죽고 싶어도 죽어 지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생각도 났다. 그리 극적이지도, 특별하지도 않아 보이는 일상의 날들과 관계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했다. 풍경이는 내게 결국 소중한 존재를 떠나보낼 때 필요한 말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세 마디뿐이라는 걸 다시 한번 새기게 해주었다.
장례예식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우리는 평소 풍경이와 함께 산책했던 들판을 걷고, 풍경이와 마지막 산책을 하고 쉬었던 나무 곁에 앉아서 쉬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러나 이번에는 언제나 제멋대로 줄을 잡아당기고, 길을 벗어나곤 하던 풍경이가 곁에 없었다. 바람이 불었다. 논에 댄 물 위로 물결이 조용히 일었고,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선선했다.
편지1
풍경아! 사랑해. 넌 내 최고의 개야.
넌 죽어서도 잊지 못할 거야.
천국 가서 엄마랑 아빠랑 만나고,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천국 가서는 밥도 잘 먹고, 간식도 많이 먹고, 잘 뛰어놀아.
나도 가면 마중 나와줘야 해.
사랑해!
넌 우리 가족과 하나님의 최고의 개가 되길 바래.
너무너무 사랑해!
- 널 영원히 잊지 못할 시아가
편지 2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정말 힘들구나.
엄마 젖 뗀 지 얼마 안 된 아기 때부터 우리에게 와서 큰 위로가 되어 주었고,
우리의 큰 사랑을 받았었지.
시아가 생기고 점차 너를 멀리하기 시작했는데
너의 마지막 시간들에 그 시아가 너의 가장 큰 친구가 외어 우리를 다시 이어주었네.
항상 우리 가족 모두와 함께 하려 했던 거 꼭 기억할게.
산책하면서 뒤처지는 우리를 고집스레 앉아서 기다리며 함께 하기를 바라던
네 깊은 마음을 기억할게.
많이 혼내고, 질책해서 정말 미안해.
어제 움직이지도 못하고 꼼짝 못 하고 있던 너의 코앞에
꽃향기 맡으며 있으라고 꽃을 한 줌 놔주었더니
시아가 풀을 네 코앞에 놓아주며 하던 말
“나는 매화야.
추운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매화야.”
넌 매화야.
- 엄마가
편지 3
네가 아기였을 때부터 지금까지
네가 커가고, 아이를 낳고, 아이와 헤어지고,
마당을 달리고, 고양이를 쫓아가고,
깊은 밤 함께 산책을 하고,
밤새 짖고, 장난치고, 말썽부리고
가족과 함께 산책하다 앉아서 가족들을 기다리고,
아프고, 피 흘리고, 눈물 흘리고, 침 흘리고,
아픈데도 논길을 걷고,
나를 보고 일어서서 다가오고,
마지막 밤 우리와 눈을 맞추는 걸 지켜보았어.
넌 내게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낱말은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세 마디임을 가르쳐 주었어.
사랑해!
- 너의 아빠, 길벗 20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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