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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ever

이런 메리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트리 타령의 아들들 성화에 이케아로 향하는 길. 나는 적당히 심드렁하지만 은근 떨리는 마음이었다. 일요일 오후의 이케아라면 끔찍할 만큼의 인파가 예상되는 바 길을 나서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들과의 쇼핑몰 나들이는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어 궁금하기도 했으니까. 언제나처럼 첫경험이라면 반기자며 ‘오 이런 날도 오네’ 놀라움을 감추고 이끌려 나섰다. 예상만큼의 질서 없이 밀렸다 빠지는 사람들 속에서 우리 아들들만이 카트에 주저 앉지 않고도 잘 걷고 핸드폰을 손에 들지 않고도 신났다.

한젤과 루다는 합의 하에 가장 키 큰 트리를 고르고 루다는 독버섯이라며 완전히 꽂혀버린 붉은 버섯 모양의 장신구를, 한젤이는 지 얼굴 만큼 커다란 금빛 별모양의 장신구를 각각 선택했다. 정말이지 언발란스한 조합이라고 생각했지만 딴지 걸지 않았다. 다만 충동구매는 하지 않도록 한 마디 했을 뿐. 루다는 생전 처음 들어 본 ‘충동구매’라는 말이 마음에 드는지 그 뜻을 따져 묻다니 더 꼼꼼하게 가격을 살펴가며 할인이 적용된 품목들 중에서 색이 겹치지 않는 것들로 골라 담았다.

한젤이는 카트를 밀고 루다를 챙기며 큰 아들, 형아 몫 이상을 해냈다. 집 안에서는 보지 못한 아들들의 늠름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위축된 이유는 미안함 일까. 나만의 ‘그럴 것이다’ 안에 갇혀 아들들이 자라며 보이는 변화무쌍한 모습 그대로를 보지 않고 게으름을 피운 건 아닐까 문득 돌아보았다.

우리 모두는 통 큰 세일가로 기분 좋게 목표를 달성하고 가벼이 집에 돌아와 쉴 틈도 없이 크리스마스 트리 만들기를 시작했다. 나는 아들들 주도 하에 완성된 삐뚤삐뚤 제멋대로 반짝이는 트리가 마음에 들었다.

우리의 일요일이 크리스마스 트리만큼 빛났다. 나는 이런 일요일을 경험한 바 없고 기대한 바 없으며 감동하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늘 동등한 가사 노동의 분담과 혼자만의 여행과 최소한의 엄마 노릇에서 재미와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왜 점점 더 가족과의 시간은 따뜻하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걸까.

늦 여름 무렵부터 가족 회의를 시작했다. 놀듯이 장난처럼 일요일 저녁마다 서로의 고마운 점 서운한 점 바라는 점을 얘기하는 시간인데 그 짧은 함께 있음이 우리를 돈독하게 만들어줬을 수 있다. 그 시간을 목 빼고 기다리는 루다 덕분에 한 번의 이벤트가 될 뻔한 위기의 가족회의가 지금까지 이어졌다는 데에 이견을 낼 수 없다. 평일에는 함께 모이기 어려운 우리 넷이 일요일 저녁에 그나마 마주 앉아 한 끼 식사를 하는 동안 공감하고 고마움을 표하고 다음 여름 여행의 계획까지 오고가는 대화를 나누다 보면 행여 빈말이래도, 실천이 어려운 계획이래도 …. 그대로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단박에 반하고 취하는 데에 주저함이 없던 내가 느린 속도로 천천히 스며드는 기쁨을 경험하는 중이다. 올해 나의 발견은 ‘가족이랑 놀아도 재밌어요’ 쯤 되려나. 그렇담 내년 나의 계획에는 지레짐작의 그럴 것이다를 지우고 내 가족을 완전히 새롭게 읽고 반길 마음의 공간과 사실의 시간을 확보하기로 적어두고 싶어졌다.

깨침은 느리고 시간은 빠르다.
이렇게 마흔을 맞는다.

#메리크리마스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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