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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 키린의 말 키키 키린의 말, 읽다가 맥주를 따버렸다. + 후련한 표정 남은 생이 올해 말까지일거라고 들은 모양이었다. 삶이 때로 지옥이면 어때, 떠날 날을 듣고서 후련한 표정을 지을 수만 있다면. + 연출적인 눈 아마도 전체를 보면서 뭐가 부족한지 거기에 자신이 어떤 한마디를 더해서 보완할 수 있는지를 아주 연출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늘 전체를 보려고 하는 나에게도 연출적인 안목은 있지만 디테일에서 완벽을 추구하지 않아서 벌어지는 격차를 아프게 받아야. + 부감해서 보는 버릇 나는 이쪽에서 보면 어떨까 저쪽에서 보면 어떨까를 생각하는, 사물을 부감해서 보는 버릇이 들었어요. 이쪽에서 웃는 사람이 있으면 저쪽에서 우는 사람이 있다든지, 그렇게 사물을 보는 습성과 바릇이 있는 모양이야. 나에게 심술궂은 면..
밤 산책. 제주도 오름을 걷고 난 저녁 숙소에서 쉬기를 선택한 친구들을 뒤로하고 마을 산책을 선택했다. 해 떨어진 제주도 작은 마을은 금세 깜깜해졌다. 유독 낮게 느껴지는 제주도 하늘에 별과 달이 손에 닿을 듯 가깝게 느껴진다. 가로등 불빛을 벗어나 조용한 어둠이 점점 가깝게 느껴지자 갑자기 무서움이 올라온다. 밤 산책 기분을 좀 더 내려고 올라오는 무서움을 이겨내고 몇 발을 더 떼어보지만 이내 몸을 돌려 빠른 발걸음으로 숙소를 향했다. 아쉬움에 숙소 주변을 더 어슬렁 거리다 밤 산책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지리산에 별 보러 다녀온 밤에도 그 무서움을 만났다. 숙소에서 별이 보이면 무조건 성삼재를 올라가라는 친구의 말이 떠올라 별을 보자마자 출발. 지리산 작은 마을도 해가 떨어지니 금세 어두워졌다. 이른 저녁이..
코로나를 만난 그 겨울. 코로나가 시작되던 그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근처 주택 살이를 시작했다. 밖을 나가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눈이 많이 온 겨울. 집에만 있던 아이들을 데리고 마을로 나갔다. 눈 내린 아침 환호하며 첫 발자국을 찍으러 나갔지만 더 부지런한 이들이 벌써 다녀갔다. 자려고 누워 코로나가 없어지면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하던 밤이 이어질 때마다 코로나 덕에 더 작아진 일상 속에 우리는 할 수 있는 그 무언가 마저 놓아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자꾸만 움츠려는 아이들의 마음을 이대로 두는 일은 괜찮을까?라는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코로나 때문에 더 작아진 겨울을 마을에서 누리기도 했다. 어린이집에서 다니 던 나들이 길을 다니고, 어느 날은 옆 마을까지 더 멀리 탐험을 떠나고, 꽁꽁 언 천과..
안녕, 새 몇 년 전 저녁 무렵, 어린이집 마당으로 새가 날아들었다. 둥지에서 떨어진 것인지, 다친 것인지. 마당을 낮게 뛰어오르다 다시 바닥으로 내려앉더니 어찌할 바를 모르고 구석으로 찾아든다. 어미 새도 둥지도 보이지 않는다. 함부로 끼어들면 좋을 것 없다는 생각에 머뭇거리고 있으려니 주변 고양이들이 어슬렁거린다. 손안에서 떠는 어린 새가 안쓰러워 차마 그냥 두지 못하고 상자에 담아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울어대는 울음소리에 마음이 어쩔 줄을 모른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어미 새가 근처에 있을 것이라는데, 괜히 데려와서 생이별시켰나 싶어 마음이 불편하다. 나뭇가지에 고기 부스러기를 찍어 먹여줘야 할 정도로 아직 어미 품이 필요한 아기 새. 이미 우리에게 온 생명이니 날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돌보아야 하나 어찌해..
철봉의 역사 작은 공터에 놀이 기구인지 운동기구인지 정의하기 모호한 철봉 하나가 덩그러니 있다. 몇몇 아이들은 텃밭 여기저기를 누비고 다니고 한 무리의 아이들은 철봉에 매달려 있다. 철봉에 기댄 아이, 철봉에 오르려고 허공에 발길질해대는 아이, 반쯤 올라가 배에 걸치고 중심을 잡으려는 아이, 철봉 위에 올라앉아 의기양양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아이. 철봉 하나에 여러 가지 풍경이 펼쳐진다. 곁에서 언니 오빠들의 모습을 한참을 보던 아이는 두 팔을 치켜들어 올리며 나를 쳐다본다. 저도 하고 싶다는 거다. 들어 올려 주니 기쁨이 퍼지는 것도 잠시 철봉이 다 감싸지도 않는 작은 손으로 잠깐 버티더니 얼굴이 일그러진다. 재빨리 아이를 안아 내린다. 철봉이 보기보다 만만찮은 것이란 것을 알게 된 날이다. 철봉을 알게 된 이후 아..
다르게 보는 일. 비 온 뒤 산책길 한바탕 떠들썩하게 내린 비를 온몸으로 맞이한 풀잎들에서 생기마저 감돈다. 그 생명이 내뱉는 시원한 숨이 코끝에 걸려서 들어 올 듯 말 듯. 코와 가슴으로 숨을 길게 당겨 그 상큼한 숨들을 몸 깊게 깊게 끌어넣어 내 바닥에 있던 탁한 숨을 밖으로 밀어내었다. 온통 초록인 세상에 마음이 빼앗겨 하늘을 보고 풀이며 들꽃을 보던 날과 달리 자꾸만 밑으로 향하던 시선에 물웅덩이 하나가 들어 왔다. 웅덩이를 한번 보고 풀잎을 한번 보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매번 다른 풍경이 만들어진다. 묘한 흥분에 카메라를 꺼내 들고 이리저리 움직여 가며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만나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제야 이 웅덩이 속 세상을 만나다니!! 웅덩이 하나에 이렇게 설렐 일인가? 오로지 웅덩이만 살피며 걷다..
사진으로 나를 만나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때의 그 장면으로 들어간다. 내게로 뛰어오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연신 셔터를 누르며 웃고 있는 내가 보인다. 내기하며 달려오다, 질 것 같으니 울상을 하며 멈춰 버리던 아이는 몇 번이고 다시! 를 외쳐보지만, 매번 이기는 언니가 야속하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고 다시! 를 외치다 출발선에 도착하기도 전 몸을 돌려 땅! 을 외치며 몇 걸음 앞서 출발하는 반칙을 사용하고서야 겨우 언니를 이기고 짓궂은 웃음 지었다. 유독 하늘이 예쁜 날들이 이어지던 날, 혹시나 마주칠 장면을 위해 카메라를 챙겨 나간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노을이 만들어 내는 풍경에 감탄사를 뱉어가며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순간 놀 만큼 논 아이들의 재촉이 이어졌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아쉬운 마음을 기어코 붙잡고 잠깐만을..
뇨뇨와 떠나다 1 어디로 떠나느냐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떠나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그것도 오랜 벗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니! 나는 산안개가 피어오르는 풍경을 담고 싶었고, 내 오랜 벗은 그런 나를 멀리서 지켜보며 사진으로 담아냈다. 길을 가다 멈춰서고 올려다 본 대나무 숲 곧고 푸르게 수직으로 상승하는 힘을 올려다 보았다.